
미국 대법원이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을 근거로 한 관세를 무효화하면서, 트럼프식 ‘즉각·전면 관세’ 카드에는 제동이 걸렸다.
그러나 이것이 곧 관세 리스크의 종식은 아니다.
오히려 앞으로는 232조(국가안보)와 301조(불공정 무역) 같은 보다 절차적이지만 강력한 수단이 전면에 나설 가능성이 커졌다. 한국처럼 대미 수출 비중이 높은 국가에겐 “전면전은 줄고, 표적전은 강화되는” 국면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핵심 산업—반도체, 자동차, 배터리, 철강—은 어떤 시나리오에 가장 취약하며,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쉽고 구조적으로 정리해보자.
1. 232와 301, 무엇이 다른가?
232조는 ‘국가안보’를 명분으로 특정 품목에 관세·쿼터를 부과할 수 있는 조항이다. 전략 산업에 특히 강력하다.
반면 301조는 상대국의 불공정 관행(보조금·기술이전·시장장벽 등)에 대응하는 수단으로, 국가 또는 산업을 타깃으로 삼는다.
IEEPA가 막힌 지금, 미국은 보다 느리지만 명분이 분명한 232·301을 통해 핵심 산업을 정밀 타격할 가능성이 높다.
즉, “넓게”가 아니라 “깊게” 들어올 수 있다.
2. 반도체: 가장 민감한 1순위
반도체는 안보·첨단기술·패권 경쟁의 중심에 있다. 232가 가장 잘 작동하는 산업이다.
특정 품목(메모리·레거시·첨단 공정 장비 연계)에 관세가 부과되거나, 미국 내 생산 비중을 조건으로 예외를 주는 방식이 가능하다.
기업의 준비 과제
- 미국 고객(클라우드·방산·자동차)에 대한 공급 안정성 데이터 확보
- 중국 연계 밸류체인 의존도 정밀 점검
- 미국 내 패키징·테스트 등 완충 거점 마련
- 232 조사 개시 시 즉시 제출 가능한 의견서·통계 자료 준비
핵심은 “한국 반도체가 미국 안보에 기여한다”는 메시지를 수치로 설득하는 것이다.
3. 자동차: 정치 변수에 가장 민감
자동차는 일자리와 직결되는 산업이다. 232가 적용될 경우 완성차·핵심 부품에 관세 또는 쿼터가 붙을 수 있다.
특히 전기차는 보조금·현지화 논쟁과 얽혀 리스크가 커질 수 있다.
기업의 준비 과제
- 미국 내 생산·고용 기여도 자료 체계화
- 핵심 부품 현지화 비율 점검 및 확대 시나리오
- 관세 10%·25% 적용 시 차종별 손익 분석
- 멕시코 생산 경쟁 구도에 대비한 가격 전략 수립
자동차는 경제 논리뿐 아니라 선거 정치에 따라 급격히 리스크가 확대될 수 있다.
4. 배터리: 공급망 통제의 최전선
배터리는 전기차와 전력망, 국방까지 연결되는 전략 자산이다. 232 적용 가능성이 매우 높다.
셀·모듈뿐 아니라 양극재·음극재 같은 핵심 소재도 대상이 될 수 있다.
기업의 준비 과제
- 원재료 추적(Traceability) 체계 강화
- 중국산 원재료 의존도 축소 로드맵 마련
- 미국 내 생산 확대와 과잉투자 리스크 균형 관리
- ESS(에너지저장장치) 등 수요 다변화 전략
배터리는 반도체와 함께 가장 높은 경계 수준이 필요하다.
5. 철강: 상시 관리 대상
철강은 이미 232의 대표 품목이다. 쿼터·관세 강화 또는 특정 고부가 제품을 타깃으로 한 조정이 반복될 수 있다.
기업의 준비 과제
- 원산지·공정 증빙 자료 강화
- 장기 계약에 관세 변동 조항 반영
- 특수강 등 고부가 제품 비중 확대
- 미국 내 가공·서비스센터 전략 검토
철강은 새로운 충격보다 “관리 역량”이 경쟁력이다.
6. 한국 기업이 공통으로 해야 할 10가지
- HS코드 재점검 및 관세 영향 시뮬레이션
- 원산지·공정 데이터베이스 구축
- 미국 내 고용·투자 기여도 패키지화
- 중국 연계 공급망 리스크 맵 작성
- 관세율별 손익 민감도 분석
- 통관·컴플라이언스 체계 강화
- 법무·로비·PR 통합 대응팀 운영
- 미국 생산 옵션 확보
- 정부와의 공조 채널 상시화
경쟁국(멕시코·캐나다 등) 동향 상시 모니터링
7. 결론: 전면 관세는 줄고, 전략 관세는 남는다
이번 판결로 ‘비상사태 전면 관세’는 제동이 걸렸다.
그러나 미국의 통상 정책은 여전히 산업·안보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한국은 안심할 수 없지만, 준비할 수는 있다.
가장 중요한 건 두 가지다.
첫째, 한국 기업이 미국 공급망 안보에 필수적이라는 점을 데이터로 설득하는 것.
둘째, 특정 품목에 대한 리스크를 미리 시뮬레이션하고 실행 가능한 대안을 준비하는 것이다.
관세는 정치의 언어로 등장하지만, 대응은 숫자와 전략의 언어로 해야 한다.
232와 301의 시대, 한국 기업의 경쟁력은 단순 생산 능력이 아니라 ‘리스크 관리 역량’에서 갈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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